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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 넘버 투가 “Wanderlust is my game”일 정도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지난 30년 동안 업무로, 또는 재미로 수많은 곳을 다녔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면 늘 아쉬웠다. 보통 한 곳에서 1, 2주씩 보내는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그 나라, 그 도시에 대한 충분한 ‘감’을 잡는 데는 그 정도로는 턱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은 다르다. 오늘부터 후쿠오카에 있는 메이노하마 웨스트 디스커버리에서 1년이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을 시작한다(“세상은 넓고 배울 건 많다” 시리즈에서는 다른 나라/문화/사람의 배울점을 강조하는 게 주 목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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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명의 30, 40대 일본/외국인들이 함께 사는 메이노하마 웨스트 디스커버리 셰어하우스>

4월에 허핑턴포스트를 그만두면서 계획한 일이다. 회사를 그만뒀다니까 니 나이에 그만한 자리가 어디 있다고 하며 첫마디부터 핀잔인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언어연수겸으로라도 일본서 한 1년 살아보는 옵션을 작년부터 저울질하던 나에게는 별 미련이 없다. 게다가 영어강사로 돈을 벌어 가며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 아닌가? 아내에게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비행기로 제주도보다 고작 20분 더 먼, 그래서 한 달에 두 번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니 우선 1년은 해보자고. 그랬더니 아내 왈, “우선은 빼고 그냥 1년 만.” 아내의 친구/동료들은 다 늙은 남편들이 사라지지 않아줘서 불만인 것 같던데….

셰어하우스에서 오늘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영어와 일어 그리고 국제적 공통어(손짓발짓)까지 총동원해 신나게 대화했다. 매니저가 없는 날이라 시오켄이라는 별명을 가진 젊은 이베이 사업가, 베트남 이주민 취업 전문가인 타카히로 그리고 자연계 잡지 디자인 일을 하는 노리코가 MWD 셰어하우스 라이프에 필요한 기본 안내를 대신해줬다. 회사에 다닌다는 우연히 마주친 다른 가이진(나 말고), 즉 외국인/한국인 여성은 오히려 겸연쩍은 지 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사라졌다.

아무튼 영화 한 편을 다 볼 시간도 되지 않는 인천-후쿠오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오늘,  새로운 삶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메이노하마 역 근처의 이자카야에 들렀다. 바에 홀로 앉자 한 중년 남성이 옆 자리에 둔 가방을 치우며 웃는 얼굴로 스미마생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코세이라는 이 남성은 직원이 내 말을 잘못 이해하고 사시미를 두 접시 주문할까봐 걱정됐는지 영어/일어를 섞어가며 거의 필사적으로 나를 도왔다.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텄다. 코세이 옆에 앉은 코세이의 친구까지 부산 이야기, 조지아와 말레이지아 간의 무역을 하고 있다는 코세이의 딸 이야기(이 부분은 그런데 사실 확실치 않다. 아리까리 한 부분이 많았으니까), 또 자기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는 코세이의 아내 이야기. 결국 자기 집에 초대한다며 코세이는 자기 아내와 통화까지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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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노하마 역 인근 이자카야에서 주문한 싱싱한 사시미와 칵테일, 총 1000엔>

당장 자기 집으로 가자는 걸 구글 번역기의 도움으로 미뤄놨다. 이자카야에서 다시 만나 그때 결정하자고. 함께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 소통하는 우리 모습은 한 편으로는 우스웠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인터넷이 우리 같은 중년에게까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게 실시간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구글에 대한 욕을 약간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소통이 어렵더라도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절실하다면 그런 마음은 꼭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코세이의 집에 갈때 꽃을 한아름 사 갈 계획인데 새 친구에 대한 내 마음이 잘 전해지길 바란다.

3 thoughts on “세상은 넓고 배울 건 많다 – 일본(2019.06.16)

  1. 1년 이라시지만 저랑 식사라도 한번 하시고 가셨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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