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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모처럼 대흥역 근처에 있는 생선구이 집에까지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사람들은 은퇴하면 뭘 하고 살까 걱정하는데 나는 매일 한 끼씩 새로운 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잘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아무튼 서강대 앞에서 불광동 방향으로 오는 7613 버스를 탔다. 그리고 이북오도청으로 가는 7212로 갈아타기 위해 역촌 오거리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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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재래시장에 대한 향수가 짙을 정도 또래 나이다. 그런데 버스를 내리는 순간 시장이 눈에 들어온 게 아니라 요즘 가끔씩 보이는 채소/과일 간이매장이 보였다. 탐스러운 감, 못생긴 감자, 잘 익은 방울토마토, 한 바구니 가득한 양파. 서로 다투듯이 채소와 과일이 도보에까지 진열돼 있었다. 즉흥적으로 가게에 들어갔다. 단감 10개에 4천원이다. 체크. 양파는 한 바구니에 3천원이라는 데 너무나 많다고 하니 3개에 천원이란다. 체크. 방울토마토 한 상자 3천원. 체크. 땅콩 한 봉지 2천원. 체크. 귤 한 망 3천원. 체크.

조선족 사투리를 쓰는 주인아줌마가 합계 만 3천원이란다. 그런데 아뿔싸. 현찰이 7천원밖에 없었다. 나는 주머니 돈 전부를 우선 아줌마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뭘 살 수 있는지 한참 머리를 굴리다 땅콩과 양파와 귤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미 7천원을 건네받은 주인은 내 돈 천원을 계속 만지작거리기만 하면서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였다.

“그 세 가지만 주세요. 다른 건 살 수가 없겠네요.”

그런데 아줌마는 “잠깐만요.”라고 하더니 “감 3개를 천원에 드릴게요”라며 끝내 그 천원을 손에서 놓지 않는 거였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주일 사이에 억 단위로 아파트 값이 올라가는 이 시대에도 천원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그 천원이 실제로 가치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과즙으로 가득한 달콤한 333원짜리 단감을 맛있게 먹었다.

PS. 더 놀라운 사실. 바로 다음 날 아내와 창경원에 단풍을 보러 갔는데, 천원밖에 안 하는 입장료가 반값으로 할인되어 우리 둘은 합계 천원에 멋진 가을 풍경을 실컷 누렸다.

2 thoughts on “천 원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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