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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천재 소녀’ 사건과 언론의 반응 그리고 일반인들의 의견/비난/옹호를 보며 두 딸을 미국 대학에 진학시킨 아빠로서 이런 생각을 했다. 즉, 극히 주관적이고 편협된 우리의 시각이 사실 누구를 탓하기 어려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인 이번 문제를 간파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

어린 소녀의 잘잘못을 탓하기 전에 우리 사회와 우리 어른들이 우리 자녀를 어떻게 그런 벼랑 끝에 서게 만들었는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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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 = 밀물 시대                       자녀 = 썰물 시대

기성세대는(50~60대) 전쟁을 생존한 우리 부모들의 희생과 교육이 평등의 지름길이라는 신조 하에 대학을 다녔고, 실제로 70, 80, 90년 대의 경기 호황에 힘입어 사회적인 입지를 굳혔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시골 소년도 공부만 파고들면 명문대를 다닐 수 있었고 고등학교만 나와도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새로운 미래가 가능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현재 10-30대)이 직면해 온 현실은 더 고조된 경쟁 사회에 비좁아진 기회 문이다. 빈부격차의 결과로 강남권 학원을 나온 학생들 위주로 서울에 있는 대학 진출이 이뤄지는 현상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입시가 일반인에게는 더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의미했고, 이전 같은 경제 성장을 기대하기 불가능한 현실에 취업난을 미리 우려하는 학생들에게는 (강남권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문대 입학이 더 절실해졌다. 물론 우리 세대에게도 조기 퇴직, 감원 등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글로벌화라는 썰물에 밀려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는, 해초라도 잡으려는 심경이었을 거다.

이런 환경적, 시대적인 쓰나미는 부모/자녀로 인해 유학이라는 돌출구를 지향하게 했다.

 
2. 한국의 교육 제도

필자는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미국에서 태어난 두 딸이 미국서 대학을 다닌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한국 부모가 당연하지 않은 또 매우 비싼 조기 유학에 투자한다. 아이가 학업 능력이 떨어져 외국에선 동기부여가 되어 잘 하려나 하는 기대, 외국에선 학업이 좀 더 수월할까 하는 기대, 이번 천재소녀 사건처럼 미국 명문대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등. 하지만 때로는 형편이 안 되는 부모까지 빚을 내서라도 조기 유학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한국의 예측 불허한 교육 제도에 맞추어 대학 준비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계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빨리빨리”에 숙달된 한국인도 교육계의 변화무쌍함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어렵다. 미국의 교육제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더 많다. 하지만 국민이 이 나라의 교육 체계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고 그 결과는 일종의 해외 도피다. 난 선진국의 정의를 “신뢰가 기본”인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시각에선 OECD 국가인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직 못 되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도하고 있는 한국식/서양식 혼합 입시 제도는 (연말만 되면 수천 가지의 원서 유형에 혼돈되어 설명회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불쌍한 부모/자녀를 생각해보라) 실패라고 믿는다.

 
3. 부모의 과잉보호

이 부분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 구조도 일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70년 대의 잘 못된 인구 관리 조치로 인하여 자녀 하나, 또는 둘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모든 사람의 뇌리에 박히게 됐는데, (필자의 아버지만 해도 정부 보조금 때문에 수술을 받으셨다) 아이가 하나나 둘 뿐이니 애지중지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우리 부모 세대처럼 형제가 10 명을 왔다 갔다 할 때는 간혹 자식이 죽는 사례도 있거니와 각자를 챙기기가 어려웠다.

말하면 잔소리지만 화실에서 자란 화초는 예쁘고 뛰어날지는 모르지만 약하다. 어느 지인이 아들을 어렵게 어렵게 하버드에 보냈는데, 그 아이가 명문 집안 아이들 사이에서 적응을 못하고 고생하다 퇴학한 사례를 난 안다. 아이 아빠는 의사여서 벌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들이 원하는 대로 대학교 1학년생에게 새 BMW를 사줄 만한 경제력은 안 됐던 것이다.

이런 연약한 아이들을 한국의 교육 현실로부터 보호한다고 조기 유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이번 ‘천재 소녀’도 이런 맥락에서 유학을 가게 되지 않았나 한다. 물론 세계 최고의 명문에 보내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또 자기의 성공을 위해 부모가 유학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부모의 학력이 높거나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자녀가 느끼는 압력은 더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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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유학을 간 친구 자녀들 중에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도 잘 하고 친구도 잘 사귀고 또 나중에 취업도 잘 한 경우도 꽤 많다. 익숙하지 않은 무대에서 최선을 다 해 좋은 결과가 난 셈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부모가 거대한 비용을 들여 자기들을 외국에 유학을 보냈다는 사실, 아이와 떨어져 사는 것을 감수한 부모의 희생, 그에 따른 지대한 부모의 기대, 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고 압력을 느꼈다.

그런 기대가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천재 소녀’ 사건 같은 비극도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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