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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니는 딸이 둘이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중년이다(즉, 필자). 그 딸들 중에 하나가 지난주에 홍콩에서 다녀갔는데 오랜만에 보는 딸 비위 맞춘다고 새를 괴롭히는(?) 어린이 그림이 로고인 어느 커피 전문점에 가서 비싼 커피를 별로 즐기지 못하면서 마셨다. 쓴 물을 다 마시고 나오면서 딸에게 화창한 날씨에 삼청공원 산책은 어떠냐니까 정색을 하면서 ‘왜요?” 하는 거였다. 그래서 자연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말을 꺼내자 딸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명동에 가자는 거였다.

2014-10-09 16.13.59

“아가야(사실 이 부분은 맘속으로만 그것도 이를 갈면서)! 명동에 뭐 하러?” 물었더니 “가게도 많고 카페도 많잖아요.”라고 대답하는 거였다. 맙소사! 방금 카페에서 나오면서 이런 말이 나오니 대책이 없었다. 어쩌면 저렇게 철저하게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나 감사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는데, 와이프가 우리도 저 나이에 그랬잖냐고 옆에서 달래는 거였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그 나이에 자진해서 공원에 간 적이 없었다. 순간, 난 나이 먹으면서 삼청 공원 겨울 산책을 즐기게 되고, 봄이 되면 강변도로에 진달래 피기를 기다리게 되었으며, 가을에 북한산 풍경을 음미하게 된 것에 대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서 긍정적인 면이 또 뭔지를 생각해 봤다.

1. 옷을 덜 사도 된다.

1984년에 와이프를 만나러(결혼 전에) 한국에 왔었는데, 그 해에 7부 바지가(그것도 회색이) 유행이어서 모든 여성이 거의 똑같은 차림으로 다니는 것을 보고 난 무슨 유니폼 입고 다니는 줄 알았다. 지금은 다양성이 많이 부각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만큼 유행에서 소외되는 것을 공포 수준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거다(지난 몇 년 사이에 ‘등산복 = 일상복’ 되는 현상을 보라). 요즘은 남자들도 패션에 얼마나 민감한지 올겨울엔 칼라(Collar) 세운 스타일 외투를 안 입은 젊은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중년이 되면 우선 유행에 덜 민감해도 익스큐스(excuse)가 되기 때문에 약간 지난 패션을 입어도 별로 눈치 보이지 않는다. 또 수년(내 경우엔 수십 년) 동안 옷을 버리지 않고 잘 보관만 하면 패션이라는 것이 돌고 도는 원리라 적절할 때 다시 꺼내입을 수 있다. 넥타이만 해도 90년 초기의 좁은 넥타이가 근래 또 한번 유행하면서 잘 보관한 덕을 봤다.

또 적어도 내 경우엔 딸내미들에게서 옷을 선물로 받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이 늘어나면서 선물 받는 옷의 수도 무시 못한다. 아마 셔츠나 재킷의 반은 지난 10-20년 사이에 아내나 딸들 부모님에게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받은 선물일 거다(바지는 맞추기가 어려워 선물 받을 가능성이 적다). 거기다가 요즘 옷은 잘 닳지도 않으니 한 번 입고되면 반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지혜가 생긴다.

하루는 둘째 딸내미를 붙들고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계셨다. 큰놈과 달라 걱정이 많은 편인 둘째에게 내게 들려주시던 교훈을 하고 계신 걸 보고 난 웃었다. 물 컵에 물이 반 담겨 있을 때 ‘반 밖에’가 아니라 ‘반씩이나’라고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시는 거였다. 아버지, 그 나이에는 그 말이 절실하게 안 들려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잔소리 같던 그 말이 주옥처럼 느껴진다. 우선 반세기를 건강하게 산 것에 감사하고,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절실하게 되어 감사하고, 곰탕 끓여놓고 도망칠까 가끔 우려될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평생을 함께 해 온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보통 필자 나이라면 국내든 해외든 꽤 많이 돌아다닌 격이 된다. 그리고 그런 행보를 통해서 깨닫는 게 있다면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산다는 것이다. 후진국에 살아도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며 나보다 수천 배의 재산을 가진 사람도 형제 간의 불화를 겪는 사람이 있다. 즉, 행복과 만족의 수치는 자기 상황을, 또 세상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거다.

3. 자연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버지 고향이 여수라서 난 어렸을 때 오동도방학 때마다 갔었다. 그런데 그때는 방파제 길을 따라 푸른 바다를 건너는 것처럼 지루한 게 없었다. 또 아버지가 ‘멋있지?’ 하시며 두둥실 떠 있는 돌산을 가리켜도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결혼 초기에(그러니까 20대 후반) 집사람과 그랜드캐니언을 갔었던 기억이 나는데, 솔직히 그 며칠 전에 들렸던 디즈니랜드만큼 감동이 안 되었다. 물론 내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어려서’ 자연의 가치를 충분히 만끽할 자세가 아니었던 거다.

특히 한국은 워낙 다이내믹한 나라라 강남 스타일이니, 카페 문화니, 서촌이니, K-Pop이니 별의별 가공 문화에 젊은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인데 그런 역동성에 어느 정도 신물이 나야 바다와 산과 강과 골짜기로 너무나도 멋진 조화를 이룬 우리나라의 자연에 심취할 수 있게 된다.

4. 시사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시사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정보다. 젊을 때는 뉴스보다는 가요 프로그램, 다큐멘터리보다는 오락쇼, 집중 취재보다는 연속극을 선호하기 일쑨데 난 나이가 들어서야 사회와 뉴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책도 이전에는 주로 픽션만 읽었는데 지금은 독서량 반이 논픽션이다.

물론 젊은이들 중에도 시사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유독 필자만 뉴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일까? 시사를 접하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때로는 사회악과 부정부패에 분노도 하지만 동시에 내 민족은 물론 세계인에 대한 연민과 이해심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오락을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젠 오랜만에 ‘1박2일’을 보며 배를 잡았고 또 한 번은 ‘삼시 세끼’ 보며 나도 낚시하고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중년이 되어 뉴스와 시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에 대해 늘 감사한다.

5. 체면 유지가 덜 중요하다.

복장에 대한 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슨 이유에서건 중년이 되면 사람이 좀 더 뻔뻔스러워진다. 소위 말해 thick-faced 가 되는데 젊을 때는 왜 그리 눈치가 많이 보였는지… 여드름 하나만 불거져도 외출하기를 꺼렸고 아무리 추워도 누가 흉볼까 봐 내복 같은 것은 입을 생각을 안 했다.

지난 몇 년 사이엔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국 소년과 남자 청년들의 약 99.99%가 머리를 앞으로 쓸어내려서 무슨 모자 쓴 것처럼 하고 다녔는데(지금도 지배적이나 조금씩 바뀌고 있음) 거기에 비하면 뻔뻔한, 고로 유행에 덜 민감해도 체면 유지에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중년 중에는 그런 어색한 모습을 한 사람이 드물었다 – Thank God!.

필자의 이발사 경우 참으로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60대 중반 아저씨인데, 전혀 사람들 눈치를 개의치 않고 자기의 멋진 머리를 휘날리며 머리 자르는데 전념하는 그런 그의 모습이 난 참 좋다. 패션이나 유행을 좇기보단 자기만의 혹은 자기에게 편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그런 자신이 수용되는 게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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