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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체로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 한순간에 느끼는 기분이 진실을 규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불안해하고 눈치를 보며 의심한다.

둘째 딸내미 지현이가 홍콩에서 와 있을 때다. 살이 많이 빠져서 옷이 헐렁할 정도로 된 딸을 맛있는 걸 먹이겠다고 애를 데리고 동내 삼겹살집에 갔다. 돼지고기는 먹지도 못 하는 와이프를 끌고 말이다. 나와 딸은 당연히 냠냠이었지만 집사람은 겨우 된장찌개를 가끔 뜨며 우리를 위해 고기 굽는데 열중하였다. 한편으로는 미안했지만 잘 먹는 딸내미를 보면서 위안을 삼았다. 집사람은 사회에서는 교수요 근엄한 학자지만 딸들 근처에 있을 땐 완전한 방실이가 된다. 아이들 앞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때로 걱정많은 아줌마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격없는 그런 모습이 더 사랑스러울 때가 많다.

2012-08-15 15.41.36

2년 전 여름에 프랑스 니스를 갔을 때 나와 아이들이 부추겨서 와이프는 재즈댄스 수업에서 배웠다는 춤을 한바탕 추었고 나는 그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놓았다.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나중에 손주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너희 할머니가 예전에 깡충거린 모습이란다.” 물론 그 안의 사람은 한국 나이로 쉬은이 된, 나와 25년을 같이 산 중년 여성이다. 그렇지만 부부가 같이 산다는 게 중요한 것이, 적어도 나에게 그녀는 40년 전에 처음 만났던 내 초등학교 동창 소녀 그대로이며 25년 전에 결혼한 숙녀와 다를 바가 없으며 작년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함께 부르던 바로 그 아내라는 사실이다.

같이 산다는 것은, 그 순간만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모든 순간을 함께 기억하고 느끼고 산다는 뜻 아닐까?

날씬해져서 좋냐? 하고 딸에게 물었더니, 아빠는 그럼 내가 살 쪘을 때는 날 덜 사랑했어? 라고 묻는 거다. 그래서, “딸내미, 아빠는 니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마다 너를 사랑했고 그리고 오늘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모든 순간에 존재한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뜻이야. 너의 지금 이 순간과 너에 대한 기억, 그리고 너에 대한 희망 모두 말이야.”라고 했더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지 씩 웃고 마는 것이었다.

우리 사랑의 형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의해 조금씩 재조명되고 조정된다. 그렇지만 또, 사랑이란 수많은 걸 한꺼번에 인지하고 기억하고 감싸 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난 와이프를 한 번 더 꽈악 안아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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