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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 와이프랑 조계사 뒷길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와이프를 위해 탐탁지 않게 여기는 콩다방(Coffee Bean and Tea Leaves)에 들려 비싼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오는 길이었는데 가을이라 조계사 뒷골목에 낙엽이 수북히 쌓인 것이 꽤 운치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다가 늘 지나면서 눈여겨보던 우뚝 선 2층 단독주택을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늘 그렇게 생각했지만 탐나는 집이었는데 담안 작은 정원에 마치 동화에서 나올 만한 아담한 회색 벽돌 2층 집이었다. 우리 둘은 두리번 거리며 저기엔 누가 살까 얼마나 달라고 할까 하며 “만약에” 게임을 시작했다.

temple

나랑 와이프는 이 “만약에”라는 게임을 자주 한다. 만약에 사업을 한다면, 만약에 미국으로 이사를 간다면, 만약에 양평에 들어가서 산다면, 만약에 집을 옮긴다면… 아마 이런 식으로 사업은 족히 50개는 열었다 닫았고, 세계에 안 살아본 도시가 없으며, 한국 내에서도 이사를 수백 번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도 만약에 이런 서울시내에 있는 주택에 살면 어떨까 하며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마침 그 집골목 반대편에서 스스스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무슨 귀신 옷끄는 소리로 처음엔 착각할 소리였는데 자세히 보니 어떤 할머니가 뒷골목에 쭈그리신 채 빗자루질을 하는 것이었다. 스스럼없는 와이프가 할머니께 다가가서 이층집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보는가 싶더니 나보고 손짓을 하며 와보라는 거다. 허리가 약간 꼬부라진 연세 많은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드리자 “아, 그래요. 남편…” 하시더니 바로 앞에 있는 당신의 한옥으로 우리를 초대하셨다.

 

도심의 빌딩 숲 속에 파묻혀있는 듯싶은 느낌을 주는 아담한 25평짜리 집이었다. 워낙 작아서 디귿자도 안 되는 좌우 양쪽으로만 건물이 선 형태의 집이었다. 할머니는 당신은 “윗채”에 사신다며 당신의 안방과 개조된 마루를 자랑하셨다. 그리고 추위 대비해 자녀들이 설치해준 윗 샤슈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한옥이란 워낙 외풍이 심하여 샤슈 덕에 할머니께서 좀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내실 수있을 거란 것이 이해는 됐지만 한옥의 멋을 앗아간 볼썽 사나운 샤슈가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선 두발 걸음 거리에 있는 아랫채 마루에 걸터앉으셔서는 당신의 역사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왜정시대를 거쳐 3년간 교단에 서 경험도 있고 8 남매 사이에서 자랐으며 지금 사는 동네에서 평생 사셨다고 설명하셨다. 특히 교단에 서셨던 것을 자랑스러워하시며 당신이 집필한 노트가 가득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와이프에게 물어오셔서 교수라고 했던 것에 대해 무슨 친분/연민 같은 것이 맺어졌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아들은 미국에 살고 딸은 서울에 사는데 자기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바쁘다고 하시면서, 혼자 삼시 새끼 잘 챙겨 잡순다는 90세 노인의 씩씩한척한 말을 귀담아듣덧 와이프 눈은 어느새 눈물로 고여있었다. 5분이면 지나칠 거리를 거의 한 시간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할머니는 우리 손을 잡으며 꼭 다시 놀러 오라고 신신 당부하셨다.

그날 밤, 답답한 마음에 일에 몰두하고 있는 와이프를 졸라서 차에 탔다. 시내 야경을 보여주려고 성북동 넘어가는 와룡공원에 다 닿았을 때 즈음 와이프가 하는 말이 “여기 오자고 나온 거야?” 하는 것이었다. 퉁명스러운 반응에 울화가 터진 나는 차를 다시 돌려 쏜살같이 집으로 향했다. 와이프가 자신의 말실수를 눈치채고 계속 달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와이프는 다음 날 저녁 늦게 회의가 끝나 힘들 텐데도 빼빼로 두 박스를 내게 내밀더니 기분 전환이나 하자고 노래방으로 끌고가는 것이었다. 둘이서 신 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둘 다 별로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그리 감탄할 만한 공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둘만이기에 서로 잘한다며 격려와 칭찬을 남발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눕자 와이프가 “아 참! ‘고백’을 안 불렀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운 자리에서 아카펠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와이프가 함께 따라 부르며 밤을 마쳤다.

물론 언젠가는 할머니처럼 혼자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때까진 서로를 위하고 손뼉 쳐주는 파트너가 되도록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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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하나와 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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