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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의 첫 기억이 뭐였는지 과거를 더듬어 본다. 성북동에 살 때 동생 진성이가 집에서 태어난 날 마루에서 추워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던 게 생각난다. 아마 만으로 네 살쯤이었나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그 집에 이사 가기 전, 아래 집 단칸방에 전세를 살던 때가 생각난다. 왜냐면 거기서 내 일생일대의 난투를 치렀으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무시무시한 Black Swan 이벤트(상상외의 흑조를 발견한 것에서 유래한 말)가 나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난 지금도 별로 잠이 없지만 (우리 어머니는 내가 토끼띠라서 그렇다고 하시는데 잠 많은 토끼띠를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어렸을 적도 그랬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오로지 딱 한 번 낮잠을 잔 적밖에 없을 정도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왜 낮잠을 자게 됐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 아무튼 그 날도 어머니 품 안에서 안 오는 잠에 부스럭 거리다가 마침내 앞 마당으로 혼자 기어 나왔다. 그런데 그때 내가 입고 있던 옷이 새빨간 쉐터였다. 독자는 잘 알고 있으리라, 빨간 색깔이 성난 황소를 얼마나 자극하는지. 그런데 내가 그때 몰랐던건 (당연하지만) 수탉도 이 색을 보고 공격을 한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우리 아랫집 명수내 수탉은 그랬다.

 

닭1닭2

 

이 녀석이 언제 담장을 넘어왔는지 아직 정신이 몽롱한 내가 신을 신고 마당에 발을 막 디디는 순간 다자고자 그 날카로운 부리로 나를 쪼기 시작하는 거였는데 혼비백산이라는 말로는 내 놀람과 공포를 감히 표현 못 할 거다. 어찌나 무서웠던지 싸우기는커녕 도망가느라고 자빠지고 엎어지고 여하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나 고함을 질렀는지 웬만하며 낮잠에서 잘 안 깨는 어머니가 어느새 나오셔서 그 사나운 수탉을 저만치 쫓아 보내시는 거였다. 그리고는 아래집 명수네에게 목이 쉬어라 야단치셨다. 당신의 귀한 아들을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닭 한마리를 간수 못 하느냐고 말이다. 얼굴, 무릎, 팔뒤꿈치, 온통 피 투성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어머니 옆에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 한 번만 더 올라와 봐라 이 몹쓸 닭아, 내가 이젠 겁 안내고 너를 박살내리라’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희한한 것은 이런 Black Swan 이벤트가 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곧바로 그 닭에게도 떨어진 것이다. 어머니의 호령 때문인지 바로 그 날 저녁에 명수내 집에서 이 닭이 매인코스로 요리되었다. 닭 입장에선 벼락도 그런 벼락이 없었을 거다. 암컷들을 거느리며 잘난 척 하다가 한방에 Black Swan을 만난 거다. 으흐흐. 나는 한편으론 너무 좋아서 쾌재를 불렀지만 약간 섭섭하기도 했다.

그 몹쓸 닭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는데…내 질문은 이것이었다. 정작 닭에 쪼인 건 난데 왜 나에게는 치킨을 하나도 안 나누어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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