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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한국친구 중에 호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의 형이 태권도 선수로 소위 말하는 우리 동네 ‘브루스 리’였는데 호는 그런 형의 영향을 받아선지 알통도 씰룩거리고 주먹도 세서 학교에서도 소문난 쌈꾼이었다. 반면 나는 얻어맞지 않으려고, 싸울 때면 할 수 없이 의자를 집어던지든지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다. 비겁하지만 덩치가 큰 미국 애들에게 맨손으로 당할 재주는 없었다.

호와 그의 형의 무험담을 들으며 나도 언젠가는 멋있게 누구를 이단 옆차기로 때려 눞일거야 하는 꿈을 꿨다. 그러나 아령의 유혹보다는 부모님의 불호령이 무서웠던 나는 할 수 없이 공부에 몰입했다. 그래도 브루스 리처럼 멋진 파이터의 인생을 어느 소년이 부러워하지 않았으랴? 그래서 그런지 난 이번 천명관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짙은 향수와 그의 스토리 묘사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는 남자들이 브루스 리가 되고 싶어 하는 5가지 이유다.

1. 브루스 리는 운동복을 입어도 폼이 난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뭘 입어도 폼이 날 시절은 지났지만 문제는 내 평생 어느 때도 꽉 끼는 운동복을 입고 내 육체미를 뽐낼만한 적이 없었다는 슬픈 사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사망한 브루스 리는 영원히 그런 모습을 고수할 수 있는 우상이 되었다.

그런 걸 보면 멋진 배우는 일찍 죽든지 일찍 화면에서 사라져야 기억에 오랫동안 멋있게 남는 것 같다. 브루스 리 외에도 제임스 딘, 몽고메리 클리프트, 등 젊음을 불태우다 사라진 그들은 멋지게 기억되지만, 아무리 한때 블록버스터급 배우의 지존이었다고 한들 요즘 쭈글 쭈글해진 성용이 담장을 넘는 모습이나 대머리 브루스 윌리스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 또 빛이 바랜 시선으로 뚫어지게 눈을 부라려 보려는 톰 크루즈를 볼 때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2. 브루스 리는 아시아판 007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007이 되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CIA 시험까지 쳐서 통과했는데 이미 다른 미국 기업에 취직이 되어 한국 발령을 일주일 앞둔 후에야 버지니아에 있는 CIA에서 마지막 인터뷰를 하러 오란 전화를 받았다. CIA 취업과정은 절차가 복잡해서 그렇게 오래 걸린것이었는데 내겐 이미 건너간 배였다.

그런데 브루스 리는 서양의 007처럼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카지노로열에서 거시기를 고문 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 눈을 찔끔 안 감았다면 당신은 남자가 아니다). 영화 정무문에서 브루스 리는 도장의 보존을 위해 총에 사격당하는 장렬한 죽음을 택한다.

 

3. 브루스 리는 괴상한 소리를 내고도 미쳤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

괴성은커녕 트림만 좀 크게 해도 무슨 저질 인간 보듯이 사람들이 눈총을 주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러나 브루스 리는 그 특유의 소프라노 고함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물론 멋진 인간으로 대접받는다.

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보통 땐 상당히 얌전한 녀석이 교실이 너무 조용하다고 ‘악’하고 큰소리를 질렀다가 선생님께 된통 뚜드려 맞고 돌아와 어머니께 한 번 더 혼줄난 기억이 난다. 이처럼 보통 사회에서는 고함이 통하지 않지만 브루스 리는 맘대로 소리를 지르며 영웅으로 통한다.

4. 브루스 리는 여자를 사로잡는다.

브루스 리는 둘째치고 내 친구 호만 보고도 멋진 무력에 여자들의 무릎이 흐늘거린다는 것을 난 이미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호가 단 한 번의 돌려 차기로 상대방을 쓰러트린 후 (공교롭게도) Kim이라는 이름의 금발 머리, 파란 눈동자 소녀가 그와 ‘go together’ 즉 짝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시기에 불탔다(그렇다고 호를 해코지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 아니라 솔직히 그의 주먹이 두려웠다. 호의 부르기 쉬운 이름도 내겐 시기의 대상이었는데 이름으로 수모를 당한 이야기는 여기에…).

도장에서 나온 브루스 리를 찾아 나선 영화의 여주인공을 보며 세상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자기도 저 인간처럼 나쁜 놈 몇 만 때려눕히면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 하는 상상을 한 적이 없다는 남자가 있다면 그 것이 거짓말이다.

5. 브루스 리는 용감하다.

속으로는 누구나 용감한 자신을 꿈꾸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인가? 천명관 소설에서 브루스 리 역할을 하는 주인공 권도운은 정말로 남자 중에 남자인데 삼청교육 때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친구를 도우며 나중엔 사랑하는 여인을 찾기 위해 일부러 감옥에 6년 동안 갇힌다(물론 이런 건 미친 짓이라고 하는 게 더 옳다).

난 딱 한번 용맹을 떨쳐보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중 2 때쯤 새뮤얼이라는 녀석과 말다툼 끝에 수업 후에 만나서 한 판 붙기로 했다(이 새뮤얼은 소설에서와 달리 나중에 내 절친이 되지 않았다). 학교 뒷마당에 서서 폼만 잡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주먹이 휙 날라오더니 내 턱을 강타하는 것이었다. 어럽쇼! 싸움 구경하겠다고 우리를 둘러쌓고 있던 녀석들 중에 어떤 놈이 나를 친 것이었다. 새뮤얼도 놀랐는지 손을 저으며 자기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싸움은 그렇게 싱겁게 나만 한 대 맞는 걸로 끝났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날 학교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뒤쪽에서 누가 내 머리에 종이로 던진 것이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 것을 그날은 나도 쌓인 게 있어서였는지 뒤로 걸어가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데이비드라는 놈을 거두절미하고 한 방 맥였다. 그런데 이 자식이 새뮤얼과 짲는지 아까 들었던 소리를 똑같이 하는 것이다  즉 “나 아니었어”라고.

모처럼 용기를 내서 주먹질을 했는데 겨냥이 또 빗나가는 것을 보고 난 브루스 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용기에도 연습이 필요한 거였을까?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 크로스 포스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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