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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부산에 일이 있어 내려갔는데 마침 시간이 되어서 내려간 김에 아내와 1박 2일 쉬다 오기로 했다. 난 부산을 갈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이 아름다운 바다 도시가 왜 우리의 수도가 아닐까? 아니면 적어도 미국의 뉴욕처럼 수도를 버금가는 인기 있는 도시가 왜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이번 블로그는 공적인 행사가 끝난 토요일 밤부터 그다음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 부부가 기차에 탑승할 때까지의 하루를 어떻게 맛있고 건강하게 지냈는지 정리해 본 글이다.

토요일 9:30 밤참
난 별로 내키지 않지만 무드를 중요시하는 마나님의 뜻을 존중해 스카이라운지라고 얼핏 봤던 장소를 향해 호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한국 특유의 애매모호한 국어-영어 혼합 제목이 그렇지 않아도 한국어가 약한 나를 헷갈리게 한다. 즉 ‘룸 비즈니스 스카이라운지’라는 곳이었다(가만히 있어봐. 정작 한글이 하나도 없잖아?) 처녀라고 하기는 성숙하고 아줌마라고 하기는 옷차림이 뜨악한 여인이 절을 넙죽하다가 체 90도를 못 가서 와이프를 발견하고는 ‘여, 여긴…”을 더듬거린다. 순간 나는 엘리베이터의 ‘Close’ 단추를 후딱 눌러버렸다. 일부러 그렇게 되기를 바란 것도 아닌데 얼어 죽을 ‘칵테일 한 잔’은 그렇게 쉽게 무산되고 말았다. ㅋㅋ.
호텔을 나와서 사상동 큰 길을 걸어 낙동강 방향으로 발을 돌리니 온통 나이트클럽 네온 사인으로 휘황찬란하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놀이동산에는 꼭 이런 조명이 필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파라곤 호텔을 지나 얼마 안 되어 24시간 낙지요리를 하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따로 식사를 했지만 둘 다 치킨을 먹은 우리는 ‘아하’ 하며 냉큼 식당에 들어간다.
가격이 너무 착한데(통 낙지찜이 16,000원) 식사를 이미 한 우리에게는 그것도 무리라 낙지볶음 1인분과 개란 말이를 시킨다. 두 사람이 1인분만 시키겠다는 말에 종업원의 눈빛이 한순간 ‘쨍’하다가 내가 후딱 “소맥도 주세요’하니까 금방 누그러진다. 낙지볶음이 프라이팬에 나오는데 1인분도 양이 얼마나 많은지 두사람의 안주로 충분하였다. 그런데 저녁을 이미 먹었으니까 밥은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해놓고, 소스가 아까우니까 밥을 반만 비벼놓자고 해놓고, 너무 짤 수 있으니까 마저 비벼만 놓자고 해놓고, 끝내는다 먹어치웠다.
술기운도 약간 있는데다 맵고 맛있는 낙지볶음 때문에 뜨거워진 몸을 식히고자 강가로 밤 산책을 간다. 왔다 갔다 약 1.5 km.
합계: 17,000원 (낙지볶음 1인분 6,000원, 개란 말이 3,000, 맥주 1병 4,000원 소주 1병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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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9:00 브렉퍼스트
[위에 ‘아침식사’라고 안 적고 ‘브렉퍼스트’라고 적었다고 ‘혀 꼬부라진 놈’ 등의 욕은 잠깐 참아 주시기 바란다.]
전날 밤 옆방에서 싸우는 건지 뭔지 말로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아닌 격렬한 소란 때문에 잠을 설친 우리 ‘한참’ 중년 부부는 일어나자 머리가 띵해 커피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한국 생활에서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니라 터무니 없이 높은 커피값이다. 그래서 호텔 로비에 있는 천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커피 전문점을 나 몰라라 하고 건너편 아웃렛 1층에 커피를 싸게 파는 패스트푸드 매장에 갔더니 햄과 개란, 치즈를 넣은 브렉퍼스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합쳐서 2,500원에 파는 것이었다. 빙고!
브렉퍼스트를 맛있게 먹고 우린 서울서 추울 때 아파트 아래층에 있는 마트를 운동 삼아 걸어 다니듯 아웃렛 백화점을 윈도 쇼핑했다. 그런데 역시 중후한 신사에게는 젊은 사람들 패션이 아닌지 백화점에서 좀 더 떨어진 어느 마트에 가서 골반이 아닌 허리(학생들, 원래 바지는 허리에 맞추는 것입니다)에 잘 맞는 바지를 하나 샀다. 쇼핑도 일인데 족히 2km는 걸은 것 같았다. 더군다나 집사람이 옷가지를 볼 때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시간도 꽤 길었는데(합리화하는 것이라고 폄할지는 모르지만) 서 있는 도중에 칼로리 소모가 엄청 높다는 어느 기사를 읽은 이후론 난 그런 상황에서 절대 불평을 하지 않는다.
합계: 5,000원 (브랙퍼스트 샌드위치 2개, 아메리카노 2잔)

 

일요일 12:30 점심
면적으로 따져서 부산시가 더 클까 서울시가 더 클까? 이런 질문을 하는 자체를 보아 부산이 더 크다고 추측했다면 아인슈타인은 못 되더라도 영구 신세는 면했다고 봐도 무난하겠다. 부산이 767 평방미터인데 비해 서울은 605평방미터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상역에서 광안역까지 지하철로 가는데 무려 45분이 걸렸다.
광안리 쪽으로 향하려면 5번 출구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순간 깔끔한 2층짜리 고깃집이 눈에 들어오는…. 이 아니라 솔직히 말하자면 바깥벽에 점심특선 13,000원이라는 광고가 눈에 탁 들어왔다. 네 글자 중에 두 글자가 두 번 반복되는 제목의 이 식당 2층에 올라가 보니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정결하다. 점심특선이라는 안창살 2인분을 시킨다. 양념된 안창살을 숯불에 구워 상추와 깻잎에 파무침과 양파와 함께 싸 먹으니 눈물이 난다. 왜냐고? 감격해서. 왜 감격했냐고? 우선 육류 결핍증이 약간 있는 아내가 고기 먹는 것을 흔쾌히 승낙해서였고 그다음에는 이렇게 싸고 맛있고 분위기 있는 곳이 서울에는 왜 없을까 하는 서러움에서였다. 종업원이 후식은 뭘 하겠냐고 해서 둘 다 물냉면을 시켰다. 와이프 왈 “싸게 먹었으니까 냉면 정도는 먹어줘야 예의지? 그렇지?”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에이, 바보. 냉면, 된장찌개, 잔치국수 중에 하나가 포함이야!” 아내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오는데 와이프가 눈을 동그라케 하고 좋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셀프 아이스크림을 찾은 것이었다. 우린 아이스크림 한 스쿠프에 무료 커피까지 곁들여서(다행히도 블랙이 이었다) 아포카토 기분을 내며 핥다가 홀짝거리고 홀짝거리다 핥으면서 터질 것 같은 배를 달래어 또 먹었다.
합계: 26,000원 (호주산 양념 안창살 500g, 물냉면 2그릇, 바닐라 아이스크림 2스쿠프, 블랙커피 2잔)

일요일 2시부터 5:30까지 – 놀기
우린 과거 급제라도 한 양 너무 뿌듯해서 팔을 훨훨 흔들며 아름다운 광안리 바다로 향하였다. 날이 흐린데도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한 광안리 해수욕장의 풍경은 가히 어느 나라의 해변에 견줄만한 한 폭 그림이었다. 또 언제 설치했는지는 모르지만 짚으로 만든 우산 모양의 구조물이 줄을 이어 서서 해변가에 밋밋함을 한층 줄여주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바다가 보이는 멋진 찻집에 들어갔을 텐데 점심에다 아이스크림, 커피까지 먹은 상태라 무작정 걸으면서 예전에 들렀던 브런치 장소도 기웃거리고 수산 시장에도 들러서 먹을 마음도 없으면서 가격을 물어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오후 놀이터인 광안리 어느 호텔에 위치한 온천 사우나에 입성했다. 이 사우나는 남탕, 여탕, 찜질방, 스크린 골프, 워터파크까지 6층을 털어 설계되어 있는데 그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노천 휴게 장소로 구성된 9층이다. 집사람은 오랜만에 온천에 왔다고 스파를 받겠다고 하여 나는 온천물에 몇 번 첨벙거린 후 홀로 9층에 조용히 앉자 시원한 바람과 멋진 풍경을 가끔 내려다 보며 부산에 오기 전에 새로 산 천명관 작가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두 시간 후 나타난 와이프는 매우 흡족한 듯한 얼굴로 시원한 주스를 한잔 주문하는데 둘이 안감힘을 다해서 마셨지만 끝내 다 못 마셨다. 우린 사우나를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가면 가장 즐기는 것이 한가지 있다. 꼬마들 뛰어노는 모습 보는 것. 장성한 딸 둘을 둔 부모로 손주 생각이 절실해서 그런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둘 다 애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애들 뛰어놓는 것처럼 귀여운 모습이 없다. 온천물로 촉촉한 살결에 마음도 촉촉한 감정으로 쌓이는 우리 자신이 창문에 비춰 보이는 것 같았다.
합계: 24,000원 (사우나 2인 22,000원, 주스 2,000원)

 

일요일 6:30 저녁
부산에 갔으니 회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사람과 나는 사실 회보다는 구이나 찜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서 배도 안 고픈데 굳이 회를 잔뜩 시켜 먹어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다. 더군다나 뜨거운 온천욕을 하고 나와서 시원한 맥주가 당겼다. 그래서 사우나에서 100미터가량에 있는 어느 칵테일 제목을 이름으로 한 멕시코 식당에 갔다. 왜냐고? 맥주에는 멕시코 음식이 제격이니까!
식당 테라스에 앉아 나초/치미창가 콤비를 하나 시키고 생맥주를 두 잔 시켰는데 어둠이 내리며 광안대교가 제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꼬리에 꼬리를 이으는 자동차 조명은 물론 다리 자체에서 나오는 불빛은 가히 광명이라고 일컫을 수 있을 정도로 눈부셨다. 우린 야경을 바라보며 나중에 혹시 부산에 살게 되면 꼭 광안리에 살자고 허튼 다짐을 하며 좋아했다.
야채가 듬뿍 담긴 나초와 바삭바삭 맛있게 튀긴 치미창가를 하나도 안 남기고 생맥주와 먹었다. 텍사스에 한때 살던 나는 한 멕시코 음식 먹을 줄 안다고 자처하는데 이 집 요리 아주 괜찮았다. 시간이 더 없어서 더 먹고 마시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나와 아내는 광안역으로 다시 향했다. 광안리에서 걸은 총 길이. 약 3.5km.
합계: 24,000원 (나초/치미창가 콤비 14,000원, 레드락 생맥주 2잔 10,000원)
거의 24시간 부산에서 한 부부가 맛있고 즐겁게 놀면서 96,000원을 썼다. 물론 내 바지값이나 아내만 따로 받은 마사지 값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렇게 훌륭한 1박2일 코스를 어느 나라에서 또 겪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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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커플이 부산에서 맛있고 건강한 하루를 10만 원으로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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